작성일
2016. 11. 29

Russia

Russia

세상에서 가장 큰 나라 러시아

정식명칭은 러시아 연방(Russian Federation)입니다. 공화국 21개, 주 49개, 변경 지역 6개, 자치주 1개, 자치구 10개, 수도인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특별시 2개 등 총 89개의 연방 주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면적은 17,098,242㎢로 지구 육지 면적의 7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매우 넓고, 넓은 국토로 인해 러시아 안에서도 시차가 11시간이나 차이가 납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지만, 혹독한 기후환경으로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 많습니다. 우랄산맥을 기준으로 서쪽을 '유럽 러시아'라고 부르며, 인구와 경제가 밀집되어 있고, 주요 관광지 또한 이 곳에 모여 있습니다.

현재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발생한 슬라브 민족 국가는 이후, 주변 민족이나 국가를 지배하며 영역을 넓혀갔습니다. 로마노프 왕조 시대에 현재와 같은 러시아 형태를 거의 구축했습니다. 소련시대에는 발트 3국이나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 아시아 국가와 합병 하여 사회주의국가 대국이 되었습니다. 1991년 소련 붕괴로 대부분의 공화국이 독립, 현재의 러시아가 되었습니다.

넓은 토지만큼 다양한 민족이 있는데, 150여 개의 크고 작은 민족이 있으며, 러시아인은 전체 인구의 80%입니다.

예술의 도시 상트 페테르부르크

러시아 레닌그라드 주에 위치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네바강 하구의 늪지대에 표트르 대제가 인공적으로 건설한 마을입니다. 예카테리나 궁전, 페트로파블롭스키 캄차스키 등 마을 전체가 세계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볼거리가 다양합니다.

발레와 문학이 번성한 예술도시이며, 5월 하순부터 7월 중순에는 해가 지지 않는 백야현상이 나타나는 걸로 유명합니다.

19세기에는 러시아 문학이 개화되어 세계 최고의 명작이 탄생하게 됩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의 시로 우명한 천재 시인 푸시킨이나 《죄와 벌》작가 도스토옙스키 등이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활동했습니다. 현재 네프스키 대로에는 그들이 활동했던 집, 무대 등이 남아 있습니다.

18세기 초, 러시아는 아직 낙후된 농업 국가였습니다. 광활하지만 척박한 땅과, 수많은 유목 민족, 지배계층의 착취 등의 요소들이 근대화를 더디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러시아를 강국으로 만든 인물이 바로 표트르 대제입니다. 표트르 대제가 왕위를 계승한지 15년, 표트르 대제는 사절단을 이끌고 유럽을 방문합니다. 유럽의 선진 문화를 둘러보고 귀국한 그는 귀족들의 수염과 복장을 서유럽식으로 바꿀 것을 명합니다. 서유럽의 에티켓을 소개하는 책을 출판하고, 상비군 제도를 정비합니다. 그의 손에 의해 중앙집권적 국가의 모습을 갖추어 나갔습니다.

표트르 대제는 공사 현장 근처에 오두막을 지어 공사를 직접 지휘했습니다. 그렇게 100개의 섬이 365개의 다리로 이어졌습니다. 표트르 대제는 도시 건설에도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대부분 검소하고 실용적인 건물 위주였다면, 여름 궁전은 그가 건설한 건축물 가운데 유일하게 호화로운 건축물입니다. 면적 800만㎡에 화려한 건축물, 조형물, 폭포와 분수가 있습니다.

크고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궁전을 원했던 표트르 대제의 딸인 엘리자베타는, 검소하게 지어진 겨울궁전을 10년에 걸쳐 바꿉니다. 그렇게 지어진 겨울궁전은 현재 에르미타주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중심 모스크바

러시아의 중심 모스크바. 정치·경제의 중심이며, 러시아 대표 관광지의 중심이기도 합니다.

1147년 키예프 공국의 유리 돌고루키가 회합을 한 장소로 《이라피예프 연대기》에 언급되는 것이 가장 오래된 기록입니다. 연대기에 따르면 1156년 한촌이었던 이 곳에 주춧돌을 놓고 나무로 된 방벽을 쌓는데, 그 나무 방벽이 바로 크렘린의 성벽입니다. 이후 점점 도시를 갖춰나갔으나, 1237년부터 1238년에 걸친 몽골군 침입에 의해 모두 불에 타게 됩니다.

1271년, 블라디미르 대공 알렉산드로 넵스키는 네바강의 전투에서 스웨덴의 침략을 막아내는 등 여러 전투에서 승리를 거둬 영웅으로 떠오릅니다. 그는 몽골 제국에 협조하기로 결정, 정기적으로 조공을 바치고 영지를 침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냅니다. 그가 죽은 1263년, 그의 아들 다니엘 알렉산드로 비치가 공후가 되며, 공국으로 독립하게 됩니다.

이반 1세, 이반 다닐로비치는 영토를 넓힐뿐 아니라, 재산을 탁월한 재정 능력으로 재산을 늘려갑니다. 그는 그 재산으로 킵차크칸국의 칸을 능란하게 다루어, 모스크바 공국을 모스크바 대공국으로 격상시킵니다. 킵차크칸국은 그에게 모든 루시의 공물과 세금을 거두어 바치게 하는 권한을 주고, 모스크바 대공국은 더욱 힘을 얻게 됩니다.

1480년 여러 전투에서 승리를 가져온 이반 3세가 모스크바 대공국을 칸국에서 완전히 독립시키며, 황제의 칭호를 사용합니다. 모스크바는 러시아 최대 세력의 도시가 됩니다. 그는 우스펜스키 사원을 비롯해 여러 화려한 건물을 세우고, 크레믈린 동쪽 담벼락 부근에 이후 붉은 광장이라 불리게 되는 광장을 만듭니다.

아직 귀족들의 힘이 강하던 시기, 권력 투쟁이 한바탕 벌어지고 난 직후인 1547년 이반 4세가 즉위합니다. 그는 개혁을 진행하며 중앙집권을 추진합니다. 1560년, 황비 아나스타샤가 죽자, 개혁 정치에 불만이 있던 귀족들이 핵심 간부들이 그녀를 독살했다는 소문을 퍼뜨립니다. 이 소문을 믿은 이반 4세는 핵심 간부를 유배시키게 되는데, 이후 공포 정치가 시작됩니다. 한편으로 그는 스스로를 '르네상스의 군주'라고 부르며 문화와 교육, 기술의 발전과, 미술, 건축부분에 업적을 세웁니다. 그 중 하나가 카잔 정복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성바실리아 성당입니다.

이반 4세가 1584년 갑자기 죽고, 로마노프왕조가 들어섭니다. 로마노프 왕조 때, 국토의 확장, 모스크바의 성장이 계속 되었으나 표트르 1세가 1712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수도를 옮기게 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러시아의 수공업과 상업의 중심지였으며, 역대 러시아 황제는 모스크바에서 대관식을 올렸습니다.

러시아혁명 뒤, 모스크바는 다시 수도가 되었으며, 소비에트 시대에 정치, 문화, 경제, 교통의 중심지로 또한번 급속한 발전을 합니다.

알렉산드로 푸시킨 삶과 작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서러워하지 말라
절망의 나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 것은 한 순간에 사라지지만 가버린 것은 마음에 소중하리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며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은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은 오고야 말리니

알렉산드로 푸시킨은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하고,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고 있는 시인입니다. 푸시킨의 시는 그의 생각이 명확하게 드러나고, 시의 형식이나 운율이 뛰어납니다. 형식미와 아름다운 운율에 대해서는 번역으로 전달이 되지 않지만, 그의 사상은 옅볼 수 있습니다.

푸시킨은 차르스코예 셀로의 황실 리세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8살 때부터 프랑스어로 시를 쓰던 그는, 15살에 문단 데뷔를 합니다. 그 다음 해인, 1815년 진급시험에서 낭독한 시 '차르스코예 셀로의 회상'으로 유명해집니다. 시험관이었던 가브릴라 데르자빈은 "그야말로 내 뒤를 이을 사람이다"라고 했다 합니다.

푸시킨은 시인으로 이름을 날리는 것과 동시에 호색가로 여성편력 또한 심했습니다. 그의 주변에는 늘 여자가 있었고, 그 자신도 쉽게 사랑에 빠졌습니다. 시의 세계에 살면서 현실의 세계에 진지하게 마주보지 않있습니다.

푸시킨은 1831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미인 중의 미인인 나탈리아 곤차로바와 결혼, 6년의 결혼 생활 중 4명의 자식을 낳습니다. 1837년 푸시킨은 아내를 탐하는 조르주 단테스와 결투를 합니다. 조르주 단테스는 푸시킨의 아내 곤차로바에게 끈질기게 구애를 했으나, 곤차로바의 언니와 결혼하게 됩니다. 그러나 단테스의 구애는 끊이질 않았고, 푸시킨에게 익명의 편지가 배달이 됩니다. 푸시킨은 그 편지가 단테스의 양아버지 헤케른이 쓴 것이라 생각하여 헤케른을 비난하는 편지를 보냅니다. 푸시킨과 단테스의 결투의 패자는 푸시킨이었습니다. 그의 안위를 걱정하는 인파가 집 앞에 모여들었는데 그 수가 2만 여 명이었는데, 많은 인파 때문에 푸시킨의 상태를 적어 문밖에 고시해야 했습니다. 결투 후 2일 뒤, 서재에 있는 책들을 보며 "잘 있어! 친구들!" 이라며 숨을 거둡니다.